상태론으로서의 의학
- 기역의 글모음
- 2025. 4. 11. 12:47
오늘은 제가 평소에 하던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병원이라는 곳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이야기하기에는 사람들이 병원에 오는 데에는 상당히 다양한 이유가 있고, 그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예를 들어, 당뇨로 오시는 분과, x-ray에 뭔가 이상이 있어서 오는 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당뇨로 오시는 분은 이미 병이 확정되었고, 그 질병의 틀 안에서 조절을 해 드리면 됩니다.
혈당조절이 잘 안된다면 원인을 파악해서 그걸 해결해 드리거나, 약을 조정해 드리면 되죠.
반면 chest x-ray에 이상이 있어서 오시는 분은, 아직 병이 확정되지 않았고, 무슨 병인지 찾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무슨 질병이다.. 라는 진단명을 붙일 수 없고, 단순히 x-ray에 이상소견이 있는 상태가 됩니다.
진료를 하고, 추가검사를 진행해서 어느정도 병이 확정되면 비로소 진단명을 붙일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질병"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상태"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태는 딱 어떤 질병으로 확정되지 않더라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검사상의 이상소견, 현재 치료하고 있는 과정 등이 모두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딱 어떤 병이다라고 질병을 확정지으려면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해서 생각할 거리가 많고,
또 확정되었다 할지라도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바에는, 단순하고 명확하게 "상태"를 나열하고, 그 상태의 집합이 어떤 질병에 높은 확률로 해당된다면 그 질병에 근거해서 치료를 진행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상태의 집합"에서 병을 찾아나가고, 치료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뇨"라는 질병은 공복혈당이 증가한 상태, 식후혈당이 증가한 상태, 당화혈색소가 증가한 상태, 인슐린저항성이 있는 상태, 당뇨약을 2개 사용하는 상태, 인슐린을 사용하는 상태가 모두 포함됩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이들이 모두 같은 당뇨환자로 진료실에 오지만 의사가 생각하고 처방을 하는 과정은 모두 다릅니다. 결국 같은 질병이더라도 실제 개별적으로 시행되는 맞춤치료는 "상태"개념에 근거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 AI가 보편화된다면, AI가 이해하기에는 질병이라는 개념보다 "상태의 집합"에서 추론하고 치료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AI입장에서는 더 쉽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면,
1. 확정된 질병 vs. 미확정 이상 소견을 모두 포함하는 "상태"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 당뇨 환자 : 이미 진단이 확정되어 혈당 조절, 약물 조정 등 질병 관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 X-ray 이상 소견 환자: 진단명이 없어 추가 검사와 감별 진단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상태(예: 폐결절 크기, 증상 유무)를 기반으로 접근합니다.
- 차이점: 전자는 질병 틀 내 관리, 후자는 상태 변화 추적과 진단 탐색이 핵심입니다.
2. 맞춤치료는 "상태"기반으로 진행된다.
동일한 "당뇨" 진단이라도 환자마다 HbA1c 수치, 인슐린 저항성, 합병증 유무 등 상태가 다릅니다.
상태 기반 접근은 개별 환자의 상황을 반영한 치료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합니다 .
3. 해결과제
물론 이러한 개념이 실제로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겠습니다.
1) 표준화된 상태 정의: 도대체 상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겠고,
HbA1c, eGFR, 영상 소견 등 상태 지표에 대한 범용적 분류 체계 필요.
2) 표준화된 의료데이터 인프라 구축:
EHR(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상태 데이터 통합 및 AI 분석 도구 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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